청소년의 '빚 갚을 의지'…어떻게 평가할까요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다시 한 번 기회를! 청소년 전용 부채탕감법이 필요하다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7.02.23 08:16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부천에 소재한 한 대학은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교정에 커피숍이 자리 잡고 있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주 5일, 하루 8시간씩 주방과 홀을 드나들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일반적인 커피숍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조금 다른 모습은 커피숍 규모에 비해 노동자들이 한두 명 많다는 것. 5~7명의 노동자들이 커피를 만들고 나르고 계산을 한다. 그런데 이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다른 커피숍과의 차이점은 명확해진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소녀는 23살이다.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 살았다는 그녀는 아직도 자연의 순박함을 얼굴에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경력이 길어 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퇴근시간이 되어 정산을 하고 앞치마를 풀 때는 노동의 고단함과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월급날이 다가오면 설레하며, 월급 중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월급 중 1/3 가량을 빚을 갚는데 쓴다. 개인회생을 했고 그에 따라 매달 정기적으로 빚을 변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소개로 만난 대출브로커…석 달만에 쌓인 빚 2000만원

그녀의 부모는 도시에서 일했다. 그녀는 할머니와 시골에 살았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문득 시골생활이 지겨워졌다. 친구와 함께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고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며 몇 년을 살았다. 쉼터에서 알게 된 친구가 같이 독립하자고 했다. 둘은 자립지원금을 받아 작은 월세방을 얻었다. 하지만 당장 생활비가 문제였다. 그 때 친구가 아는 오빠를 소개시켜줬다. 그 오빠는 쉽게 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친구에게 소개 받은 오빠는 대출 브로커였다. 서류를 위조하고 유령회사에 취업한 것으로 꾸며 두 곳의 대부업체에서 600만원을 대출 받았다. 오빠는 이중 40%를 수수료라며 떼어갔다. 대출받은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다시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3대나 개통해서 오빠에게 주었다. 오빠는 스마트폰 값의 반 밖에 안되는 돈을 주었다. 다음엔 고가의 가전제품을 렌탈하게 한 후 반 값 정도만 주고 가져갔다.

한 건 한 건 할 때마다 오빠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고 술도 사주었다. 외모도 잘 생겼고 성격도 친절했다. 오빠를 소개시켜준 친구는 빌린 돈을 공동생활비로 쓰고 같이 갚자고 했다. 그렇게 석달만에 빚이 2000만원이 넘었다. 빚 독촉이 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오빠의 요구에 더 이상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절했던 오빠는 연락을 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같이 빚을 갚겠다던 친구는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겼다. 그녀는 2000만원이 넘는 빚을 온전히 혼자 떠안게 되었다.

렌탈회사는 그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생전 처음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다행히 렌탈회사는 가전제품의 정가를 변상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그녀의 빚은 그만큼 늘었다. 월세가 밀리자 자립지원금으로 얻었던 방에서도 쫓겨났다. 찜질방과 거리를 전전하게 됐다.

회사까지 찾아오는 대부업체·끊임없이 걸려오는 독촉 전화…'3개월' 간 한 곳에서 일하기도 힘들어

그러던 중 지금 일하고 있는 커피숍을 알게 됐다. 사장님은 십여 년 째 청소년사업을 꾸려오고 있는 활동가였다. 그녀처럼 큰 빚에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다른 곳 보다 약간 많은 시급을 주었고 규모보다 많은 청소년을 채용하고 있었다. 지역 청소년 자립관과 협력해 숙소도 마련해 주었다. 저축 계획을 세우게 했고 계획을 완수하면 저축액만큼의 인센티브를 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처럼 대해주고 고민을 함께해주었기에 한 번 일하기 시작한 청소년들은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곤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는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심지어 대부업체에서는 켜피숍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어 개인회생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변제의지가 문제였다. 개인회생을 위해서는 3개월 이상 고정적으로 급여를 받은 이력이 필요했다. 빚 독촉을 이겨내며 3개월 간 근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소년들이 빚 독촉에 못 이겨 직장을 그만두고 도망 다니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다행히 그녀는 사장님이 토닥여 주고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막아 줘서 버틸 수 있었다.

개인회생은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고 일정기간 채권추심을 정지시켜주는 제도다. 채무자에게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준 뒤 3년 정도 장기간에 걸쳐 빚을 변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채권 추심은 채권자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다. 채권자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채권추심은 물론 조심히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채무자의 변제의지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빚을 져서라도 일단 돈부터 쓰고 나중에 개인회생을 하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가족때문에·사기당해 빚 진 청소년 적지 않아…청소년 위한 채무탕감 정책 필요

큰 빚 진 청소년 새로운 삶 살겠다는 의지그런데 변제의지의 확인이 때로는 청소년들의 개인회생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들은 그녀와 같이 도덕적 해이때문이 아니라 브로커나 가족들에 의해 큰 빚을 진 경우가 많다.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나 활동가들을 만난 청소년들은 어렵게라도 개인회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빚을 갚기는커녕 점점 더 빚이 늘어나고 그 빚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채권자의 재산권 행사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의 변제의지는 성인과 다른 잣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개인회생의 문까지 두드린 청소년들은 대부분 빚을 갚고 건강한 삶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들에게 변제의지는 '3개월 이상의 고정적 급여'가 아닌 '빚을 갚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우리는 노력하는 청소년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줄 의무가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별도의 채무탕감 정책이 절실하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외부 필진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