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 내 자녀는 '늙은 나'를 부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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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2017.03.02 17:17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각자 알아서 사는 거야!" 2016년 흥행몰이를 한 영화 '부산행' 중 좀비가 창궐하는 열차에서 아빠가 딸에게 한 말이다. 비단 영화 속 좀비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국한된 것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위험과 가난으로 내몰려가는 열차 안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도생. 다가올 세태를 전망하는 어느 책에서도 2017년 새해의 키워드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조사가 이루어지는 현 시점에서는 높으신 분들도 허겁지겁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개돼지에 속하는) 우리 민초들도 그런 거대한 게이트의 여파 속에서 촛불같이 휘청이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급한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 직장에서 잘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서 내 몸 하나 뉘일 곳을 찾고, 자신과 식구들의 입에 먹을 것을 넣는 일이다. 당장 급한 불을 껐다면, 그 다음에는 늙어진 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할 터이다. 그런데 지금이 각자도생의 시대임을 힘껏 부정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정부다.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2012년 여름, 거제 시청 앞에서 독극물을 들이킨 이씨 할머니의 소식이 전해졌다. 할머니의 유서에는 '살아가기 힘든데 기초생활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 게 원망스럽다', '법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법이 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나 부양의무자인 사위가 소득이늘면서 수급에서 떨어졌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받지도 못한 부양비를 '받은 셈' 쳐서 생긴 일이다. 

2013년 12월, 부산의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아버지는 딸이 취업을 해 수급탈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 그는 이혼 후 부산의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던 신부전증 환자였다. 그의 병원비는 한 달 100만원이 넘었고, 이제 막 취업한 딸에게 병원비 부담을 지울 수 없어 고민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했다.

부양의무자 기준…받을 수 없는 '부양비'를 '받은 셈' 치고 지원에서는 배제한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무엇일까? IMF한파가 휩쓸고 지나간 지난 1999년,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고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 먼저 자신의 부모나 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에게 일정금액 이상의 소득 및 자산이 있을 경우, 먼저 그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생계를 이어갈 것을 강요하고 있다. 

법에 따라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자녀들은 부모의 생활비뿐 아니라 의료비, 주거비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 각자도생도 벅찬 사람들에게 부모를 온전히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설령 그 부모가 부양비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받은 걸로 친다. 그렇게 받지 않은 부양비를 받은 셈 치게 되면 그만큼 생계급여가 깎이거나 수급에서 탈락한다. 2017년 1인 생계급여는 월 49만5000원 정도. 한 사람이 겨우 숨 쉬고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다. 거기에서 부양비를 받는 셈치고 10만원이라도 깎이게 되면 월 39만 5000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가 아닌 폐지가 답

이런 부양의무자 제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다. 대부분 자살을 택했다. 부모나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던 사람들, 그러나 더 이상 살아나갈 방도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2015년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하면서 부양의무자 제도를 대폭 손질했다고 했다. 그 결과 부양의무자에게 미약하나마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소득기준이 4인 가족 기준 200만 원대에서 400만 원대로 상향되었다. 다행히 받지도 않는데 받는 셈 쳤던 '간주부양비'는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에게 부양능력이 있다고 보는 소득기준이 아무리 상향되어도 부양비를 받지 못하면 수급자 입장에서는 소용없는 일이다. 당연한 귀결로,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로 수급이 가능해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불어 부양의무자 가족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서 부양능력 여부를 가리는 기준은 수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소득기준이 완화돼도 실제 재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역시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된다. 예를 들어, 노부모 2인을 부양해야 하는 4인가구의 전세보증금이 3억5400만 원 이상이면 부양능력자다(부채를 제외한 금액). 예금 등의 일반재산이 있다면 재산액에 더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2016년 아파트 평균 전세금액이 4억을 돌파했다. 앉아서 깔고 사는 내 집을 팔거나 전세금을 줄여가면서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땜질식 처방을 해왔다.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만 수차례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얼마가 되었든 실제 부양을 받지 않는데도 잠재적 부양가능성만으로 사람들을 수급에서 탈락시키는 근본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양의무자 제도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이유다. 거기에 더해 가족관계를 이유로 부양을 요구하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어 버렸다.

'각자 알아서 사는 거야!' 부양의무자 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배진수 변호사는 서울시복지재단 내에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 개선, 위기청소년 성매매 예방 등 복지 분야의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외부 필진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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