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늙고 병들고…'성년후견인' 남 일 아닙니다"

[인물포커스]소순무 율촌 변호사 '한국후견협회' 초대 회장…"전문가들 현장 경험 공유해 제대로 된 '틀' 만들어야"

박보희 기자황국상 기자 2017.05.02 07:55
소순문 변호사/사진=법무법인 율촌



"성년후견인은 '우리'의 일이에요. 특별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능력이 떨어지잖아요. 도움이 필요하죠. 핵가족, 고령화 사회에서 더이상 가족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제대로 틀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사회적 낭비와 갈등이 굉장히 커질 겁니다. 미리 준비해야 돼요."

성년후견인은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의 이유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피후견인)에게 법원이 의사결정을 대신할 법적 후견인을 정해주는 제도다. '포괄적 법정대리인'으로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상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법원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을 개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것은 지난 2013년 6월. 아직 생소하다.

법무법인 율촌의 소순무 변호사는 지난 달 18일 문을 연 한국후견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소 변호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성년후견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년후견인들의 정보 교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업무에서 부딛히는 사례들을 공유하고 더 나은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한국후견협회를 만든 이유다.

한국후견협회는 성년후견제의 안착과 제도 설계, 학자, 법조인, 사회활동가 등 전문가 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인 제도를 다듬고 성년후견인들 간 다양한 경험을 모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성년후견인은 변호사 뿐 아니라 법무사, 세무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게 돼 있어요. 피후견인의 재산 관리 뿐 아니라 신상보호 역시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에요. 후견인의 법률 문제 뿐 아니라 건강이나 의료,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이유죠. 여러 영역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피후견인을 위한 제대로 된 업무가 이뤄지기 힘들어요.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장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조해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에서 뜻을 모았죠."

신 총괄회장 사건으로 성년후견제도가 알려지면서 '재산관리'를 위한 제도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성년후견인이 필요한 것은 '부자'들만이 아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지적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 더 필요하다. 소 변호사는 성년후견제도는 일부 전문가의 새로운 '사업 영역'이 아닌 '사회안전망'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견 업무는 공공성이 강한 업무에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고 보호하는 것 역시 후견인의 역할이에요. 민간의 협력이 없으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요. 주민 속에 들어가 누가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야 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은 공공후견인의 영역이에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보호해줘야 하는 역할을 담당할 이들이 필요해요."

소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이 만든 공익사단법인 온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온율은 성년후견제 정착을 주요 목표로 두고 실제 성년후견을 맡아 활동 중이다. 아직 사회 곳곳의 성년후견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업무 수행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예를들어 피후견인을 대신해 은행 업무 하나를 처리할 때도 8개 정도의 서류가 필요해요.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는 것을 증명할 서류부터 왜 이 업무가 필요한지를 증명할 것까지요. 병원 입원 등 치료가 필요하기라도 하면 이를 위해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하니 시간도 시간이고 그때마다 추가 비용이 들죠. 사례가 늘어날수록 가정법원이 이 일을 다 감당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될 거에요."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상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재산처분이나 관리에 대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요양원이나 병원에 입원하는 등 신변을 제약하는 결정이 필요할 때에는 가정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같은 규정을 둔 이유는 성년후견인을 '감독'하기 위해서다. 실제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성년후견인에게 어떤 권한까지 부여할 수 있느냐는 '신뢰' 문제는 제도의 성공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우리보다 앞서 성년후견제도를 시행중인 일본에서는 관련 범죄가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어요. 국가의 후견감독은 필수적이죠. 어떻게 효율적으로 감독하느냐 역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에요. 부작용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나서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는 거죠. 여러 사례가 모이고 현장에서 공유되면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여갈 수 있을 거에요. 사회안전망으로서 성년후견제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관심을 갖고 제도적 틀을 정비해야 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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