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재판은 뭘까' 권석천이 묻고 이용훈이 답하다

권석천 JTBC 보도국장 '대법원, 이의있습니다' 출간…이용훈 대법원장 재조명

김종훈 기자 2017.07.27 11:48

서초동의 밤은 밝다. 퇴근할 줄 모르는 판사들 때문이다. 밤늦은 퇴근길에 불켜진 법원을 볼 때면 늘 궁금했다. "저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죽어라 일하는가."

이에 대한 박시환 전 대법관의 답이다. "좋은 재판을 하고 싶었다." 박 전 대법관은 2003년 기자들 앞에서 대법원 개혁을 외치며 사표를 던졌다. 그의 사표는 4차 사법파동에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됐다.

무엇이 좋은 재판일까? 전국법관대표회의와 법원행정처의 갈등이 6차 사법파동으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지금,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책 한권이 나왔다.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지은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란 책이다.

권 국장은 그 답을 '이용훈 코트(법정)', 즉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에서 구하려 했다. "이용훈 코트가 기획한 대법원은 논쟁의 콜로세움이었다." 권 국장이 끈질긴 취재 끝에 내린 결론이다. 논쟁의 원동력이 된 '독수리 5남매' 영입, 반대에 재반대, 재재반대 의견까지 치열했던 전원합의 과정, 공판중심주의를 위한 노력. 이용훈 코트는 열려 있었다. 갈등과 논쟁을 기쁘게 맞았다. 권위에 의한 맹종보다 설득을 중요시했다.

지금의 재판은 좋은가. 권 국장은 고개를 젓는다. '양승태 코트'의 키워드는 '일관성'이었다. 비슷비슷한 대법관들이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판결을 지향했다. 대법원 판례를 열심히 쫓아가는 법관들이 '유망주'가 됐다. 판례는 기록이다. 기록은 법정보다 사무실에서 보는 게 편하다. 공판중심주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소송은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 과정이지만, 법의 잣대로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다수의 판결이 판사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나온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판사는 "당신 잘못"이라고 한다. 
여기서 생긴 욕구불만은 사법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판사와 친하다는 법조인에게 달려간다. 법조비리의 시작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유유상종하던 판사, 검사, 변호사들끼리 더 똘똘 뭉친다. 법조 카르텔이다.

권 국장은 이런 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판권을 쥔 법관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심판권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라고 가르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말한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다. 

5000만명을 섬기면서 하나의 정의만 고수할 수 없다. 5000만명 모두를 위한 정의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뜯어고쳐야 한다. 권 국장은 그래서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정의는 명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사다."

권 국장은 이용훈 코트의 한계도 지적한다. 재판개혁을 시도하면서 법원행정처에 기댄 것을 두고 "목표는 개혁적이었지만 수단이 재래식이었다"고 했다. 과거사 정리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 것을 두고 "그 역시 시대의 아들이었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사법부 개혁을 짊어질 차기 대법원장을 향한 제언이다. 양승태 코트의 종말이 2개월 남았다. '대법원, 이의있습니다'는 다음 사법부를 위한 하나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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