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갚을 돈 상쇄하는 '상계'…세금에도 적용될까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김용택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6.12.22 06:00

로마법에서부터 인정되어 온 상계(相計)라는 것이 있다. 쌍방이 서로에 대해 동일한 종류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채권들을 서로 대등액에서 소멸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A가 B에게 100만원을 받을 채권을 가지고 있고, B는 A에게 60만원을 받을 채권이 있는 경우, A와 B는 둘 모두는 일방적으로 60만원의 범위 내에서 서로의 채권을 소멸시킬 수 있다. 즉 B는 A에게 '100만원을 갚아야 하는데 너에게 받을 돈 60만원이 있으니, 이를 제외하고 40만원을 갚겠다'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상계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동일한 종류의 채권을 가지고 있을 때 각자 청구나 집행을 하면서 생기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덜어주는 기능을 한다. 특히, 두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이 파산 등으로 자력이 나빠진 경우, 다른 쪽 당사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자신이 부담하는 채무를 전액 변제해야 한다면 불공평하다. 상계는 이러한 불합리한 점을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

'상계'라는 개념은 다른 분야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불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그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면 이를 참작하여 손해배상액을 감액하거나(과실상계),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이익을 얻은 경우 그 이득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있다(손익상계). 상법상 계속적 상거래관계에서 일정 기간 동안 발생한 채권∙채무를 총액으로 상계하고 잔액만을 지급하기로 하는 '상호계산'도 있다.

세금은 '상계' 허용 안돼

그런데 '세금'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상계가 허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가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A에게 한 과태료처분이 취소되서 A에게 받은 과태료를 다시 돌려줘야 하게 된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기서 국가가 A에게 받을 체납세금이 있으니 줘야 할 과태료 금액과 상계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된다. 

국민들 사이의 일반적인 분쟁과 달리, 국가는 법원판결 없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수 있고 이것은 국민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세금징수를 위한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한 시민혁명의 결과이다. 
그런데 국가의 위법한 행정행위 등으로 국민에게 재산상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단지 그 국민에게 체납세금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가 그 세금만큼 국민의 손실을 보전해 주지 않는다면, 국가는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세금을 징수하게 되고, 이 경우 국민의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세법에서는 국가가 납세자로부터 받을 세금과 납세자의 국가에 대한 채권을 서로 상계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측면을 달리하여, 세금에 관한 한 국가의 상계주장이 허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납세자도 자신이 국가로부터 받을 채권과 체납세금을 상계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세금을 체납하고 있던 납세자가 국가로부터 받을 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 민사 일반법리와 달리 국가가 미리 체납세금을 이유로 납세자의 채권을 압류해 두지 않았다면 납세자의 채권이 양도된 이후에는 더 이상 체납세금을 이유로 양도된 채권의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납세자가 세금 환급받을 권리 있다면 예외적으로 '상계' 허용

다만, 납세자가 국가로부터 세금을 환급받을 권리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국가에 의한 상계가 허용되고 있다.

납세자는 잘못 납부한 세금이 있는 경우 그 환급을 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세법은 그 납세자에게 다른 체납세금이 있을 때에는 국가가 환급해 줄 금액을 납세자의 체납세금에 일방적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와 납세자 사이에 서로 주고 받을 채권의 성질이 세금으로 동일한 경우에는 특별히 국가에게 '충당'이라는 방식의 상계를 허용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로는 보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 결과 납세자의 국가에 대한 환급채권이 제3자에게 양도된 경우 국가가 미리 그 환급채권을 압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체납세금과 상계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납세자가 과세처분을 받고 세금을 납부한 후 행정소송 등을 통해 과세처분이 취소된 상황에 적용해 보자. 이 경우 납세자는 국가에 대해 납부한 세금의 환급채권과 행정소송의 승소에 따른 소송비용 상환채권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납세자로부터 징수해야 할 체납세금이 있다면, 국가는 그 체납세금으로 ① 납세자의 세금 환급채권에 대해서는 충당의 방식으로 상계할 수 있으나, ② 납세자의 소송비용 상환채권에 대해서는 곧바로 상계를 주장할 수 없고 별도로 세법이 정한 바에 따라 압류 등의 징수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국가나 납세자 모두 상대방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채권은 그 내용에 따라 그 채권을 회수하기 위하여 취하여야 할 조치나 절차가 다르고, 그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는 지 여부에 따라 그 채권의 실제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김용택 변호사는 조세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분야다. 각종 소득세, 법인세 관련 사건 외에도, 자본거래 관련 증여세, 금괴 도매업체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지방세 환급 및 추징, 조세포탈 관련 사건 등을 수행했다. 서대문세무서 납세자보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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