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의눈]'사시폐지' 재확인한 변호사업계 선거결과

사법시험 부활공약 내세운 후보들 힘 못쓰고 로스쿨 지지받은 후보들 압도적 승리…변호사단체 잃은 사시부활운동 대선판 기웃

유동주 기자 2017.01.29 18:41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김현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김광년 대한변협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전달받은 후 들어보이고 있다. 김현 변호사는 오는 2월27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2년 동안 변협을 이끌게 된다. (대한변호사협회 제공)/사진=뉴스1
이찬희 변호사가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서울지방변호사회 2017년도 정기총회'에서 제94대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으로 당선된뒤 기뻐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총 투표 8420표 중 4503표를 얻으며 과반을 넘겨 당선됐으며 2년간 서울지방변호사협회를 이끌게 된다./사진=뉴스1


지난 16일과 23일 변호사업계는 양대 변호사단체 수장을 뽑았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 회장이다. 
향후 2년간 변호사업계를 좌우하는 두 번의 큰 선거에서 승리한 김현 차기 협회장과 이찬희 서울변회 회장은 맡게 될 단체의 규모와 성격은 다르지만 선거운동 중 내세운 공약과 메시지는 비슷했다. 

변호사업계의 '분열과 갈등 종식' 혹은 '화합'이었다. 여기엔 업계 선수들끼린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숨은 의미가 있다. 바로 '사법시험 부활'활동의 종식이다. 

◇헌재 '사시폐지 합헌'에 이어 변호사업계 선거결과도 '사시폐지 재확인'

이들은 선거기간에 사시출신 동료선후배들이나 사시부활에 적극적인 저연차 연수원 출신 일부 변호사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시폐지'나 '사시존치 반대'라는 등의 표현을 공보물에 넣거나 즐겨쓰진 않았다. 하지만 선거 토론회에서나 언론의 질문이 들어왔을 땐 "사시폐지는 이미 돌이킬 수 없고 변호사선발은 로스쿨로 단일화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시 말해 이번 변호사업계 선거결과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내렸던 '사시폐지 합헌' 결정에 이어 수년간 법조계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 간 사시존치 활동에 재차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법체계상 기본권적 법적 쟁점의 마지막 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는 헌재가 사시폐지는 합헌이라고 최종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업계엔 이에 불복하는 이들이 있었다. 주로 연수원 출신 저연차 변호사들인 이들은 변협·서울변회 선거를 자신들의 뜻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봤다. 이미 2013년과 2015년 선거에서 이겼던 경험이 있고 변호사단체의 영향력과 예산을 이용해 사시존치에 매진하기도 했다. 

김현·이찬희 변호사는 사시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장성근·황용환 변호사와 경쟁해 압승(壓勝)했다. 그만큼 변호사업계엔 폐지수순이 거의 마무리단계인 사시를 부활시키려는 이들의 숫자가 실제론 소수에 불과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하창우 현 변협 협회장과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2년전 '사시존치'를 주요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지난 2년간 양대 변호사단체는 제1의 목표를 사시존치에 두고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누가 사시부활을 원할까

변협 선거에서 진 장성근 변호사는 전국에서 4143표, 서울변회 선거에서 패배한 황용환 변호사는 서울에서 3077표를 얻는데 그쳤다. 따라서 그들에게 표를 준 이 들중 상당수가 사시부활을 원했다고 후하게 계산해도 사시부활을 원하는 변호사들은 전국적으로 3000여명, 서울엔 2000여명 이하다. 전국 변호사가 2만2000여명, 서울만 1만6000여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면 의미있는 숫자일 순 있지만 적은 숫자다. 

지난 수년간 변호사업계와 법조계 그리고 온 사회가 이미 폐지수순이던 사시를 존치시키려는 이들의 적극적 활동으로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로스쿨제도가 재점검돼 개선점이 나온 것은 긍정적 효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소수의 '적극성'이 조직화되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정치권도 풍파를 겪었다. 로스쿨과 엮인 정치인들은 사시존치세력에 찍히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법조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형사법상 기본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시부활 운동을 하던 변호사들이 중심이 돼 특정 정치인에게 로스쿨과 관련된 '의혹'을 던지면 바로 '유죄'로 취급됐다. 여기엔 언론도 한몫했다. 로스쿨은 사시부활 운동을 하는 이들에 의해 어느새 '음서제'와 '금수저'의 대명사가 됐다. 이 와중에 지방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연수원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 변호사 9급 응시'라는 대대적인 오보에 의해 뜻밖의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왜 변호사단체 선거가 중요했나

지난 4년간 사시부활 활동에 앞장 선 변호사들은 2013년 서울변회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조직과 돈을 거머쥘 수 있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국회의원들과 수시로 접촉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올랐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서울변회는 변호사들이 사건수임시 내는 일종의 수수료인 경유비 수입이 커서 수백억의 예산을 운용하기 때문에 변협보다 정책사업을 벌일 여력이 오히려 더 크다. 

한때 국회에선 검정색 서울변회 승합차가 매일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법사위는 물론이고 전체 300개의 의원실 우편함엔 '사시존치'관련 자료가 자주 꽂혀 있었다. 그만큼 서울변회는 적극적이었고 여기에 2년전 변협 협회장으로 하창우 변호사가 당선되며 그 강도는 더 심해졌다. 변호사업계 대표단체 두 곳이 합심해 사시부활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두 단체를 잃은 사시부활 운동이 과연 어디에 기대 활동을 이어갈지도 주목되는 바다. 벌써부터 선거에 진 이들이 변호사단체 분리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출신별로 단체를 나누자는 것이다. 일부는 대권도전에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에 기대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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