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지어 다니면 죄? 교육이라는 이름의 처벌 '통고'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범죄 저지를 것 같다' 이유만으로 소년원 보낸다?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7.03.09 10:09

서울 근교 개발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 아파트와 빌라로 뒤덮여 삭막한 마을 한 가운데 아담한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 한 채가 생뚱하게 남아있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의 집요한 회유에도 꿋꿋이 작은 터전을 지켜온 이는 수녀님 한 분과 십여 명의 여자 청소년들이다. 아담한 마당을 가진 그 집은 수녀님이 18년 째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보듬고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이다.

지난 주 수녀님은 법원에서 다소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소년사건에 통고된 두 청소년의 신병을 위탁받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법원의 결정으로 두 명의 소녀를 일정기간 수녀님의 집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연유를 묻는 수녀님의 질문에 법원 관계자는 '통고' 처분이라 설명했다.  낯선 단어에 수녀님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통고의 의미를 알고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성격이나 환경에 비춰 앞으로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 할 우려" 있으면 '처벌' 가능?

소년법 제4조 제3항은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소년을 발견한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보호관찰지소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장은 이를 관할 소년부에 통고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제1항 각 호는 다음과 같다.

1. 죄를 범한 소년
2.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
3.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고 그의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인 소년
가.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性癖.성질이나 버릇)이 있는 것
나.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것
다.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이 있는 것

법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그대로 옮겼다. 1호의 "죄를 범한 소년"은 범법행위를 한 소년이다. 2호는 범죄행위를 했지만 10~13세에 해당하는 소년이다.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처벌받지 않지만 10세 이상일 경우 소년법상 처분은 가능하다는 의미다. 1, 2호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3호는 그렇지 않다. 3호의 의미는 집을 나와 또래들끼리 무리지어 다니거나 술집이나 노래방 등을 출입하는 청소년들을 통고처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통고는 소년을 소년재판부에 송치하여 심판을 받게 하는 제도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보호자에게 돌아갈 수도 있지만 심할 경우 소년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마시거나 몰려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을 재판정에 세우고 소년원까지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주위에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것'에 대해 누구든 훈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법정에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장래에 범죄를 저지를 '우려'만으로 사람을 가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범죄 저지르지 않아도 '성격·환경'으로 '예비범죄자' 되는 청소년들

이처럼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청소년을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이유는 소년법의 보호처분은 형벌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법에는 10개의 보호처분이 있다. 1~5호 처분은 신병이 구속되지 않으나 6~10호 처분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특수시설이나 소년원에 신병이 구속된다. 특히 10호 처분을 받으면 2년 동안이나 소년원에서 생활해야 한다. 하지만 법은 보호처분을 소년의 교육을 위한 일종의 행정처분으로 볼뿐 형벌로 보지 않는다.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소년에게도 보호처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녀님은 결국 두 청소년을 같이 살기 위해 법원에서 대리고 왔다. 그런데 그들의 통고처분 사연은 더욱 놀라웠다. 같은 시에 소재한 대규모 보육시설에서 재원생 간 폭행 및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시설의 대응은 안일했고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관계당국의 시설폐쇄명령으로 이어졌다. 몇몇은 원가정으로 복귀됐고, 몇몇은 새로 만들어진 그룹홈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두 청소년은 소위 좀 노는 아이들이었다. 그룹홈은 그들을 부담스러워 했고 복귀할 원가정은 없었다. 시설장은 이들을 법원에 통고했다.

법원은 통고제도를 청소년 문제에 신속히 개입할 수 있고 전과가 남지 않는 훌륭한 제도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도 예비범죄자 취급 받으며 법정에 서게 된 청소년들은 통고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부분의 위기청소년들은 가슴 한 곳에 사회나 가정에 대한 울분을 가지고 있다. 사회와 가정은 그 울분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을 것이다. 가슴 속에 울분이 남아있는 한 청소년들의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잘못에 대한 지적과 합당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울분을 풀어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법관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소년원에까지 갈 수도 있는 보호처분은 청소년 입장에서 형벌과 다를 것이 없다. 전과가 남지 않고 교육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성인들의 생각이다. 물론 소년부 판사들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최대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10~20분 진행되는 재판에서 그들의 마음이 청소년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청소년들에게는 그저 1호, 2호, 혹 10호라는 처분만 남는다.

아침 바람이 춥기는 하지만 성격 급한 개나리는 벌써 꽃 피울 준비를 하는 봄, 두 소녀는 법원을 거쳐 새로운 시설로 보내졌다. 아무리 집과 같이 따스한 곳이라 해도 제발로 찾아간 곳이 아닌 이상 그저 또 다른 시설일 뿐이다.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이 폐쇄되었고 통고처분을 통해 재판정에 서게 된 두 소녀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 덩이의 울분이 더 쌓였을 것이다. 18년 동안 갈 곳 없는 소녀들을 품고 살아온 수녀님의 따스한 품에서 그녀들의 울분이 풀리길 간절히 바래본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외부 필진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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