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김이수가 사과한 급발진 판결···어땠길래?

2004년 '입증책임 소비자 부담' 판례 후 13년···김이수 "소비자 입증책임 완화 필요 지적, 겸허히 받아들여"

황국상 기자 2017.06.11 10:23
국내외 급발진 사고유형 /사진=머니투데이 DB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금까지 국내에서 신고된 자동차 급발진 사고만 수백건 입니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 강동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급발진 사고차량은 482대였습니다. 이 가운데 210대가 현대자동차 차량이었고 기아자동차(78대), 르노삼성(71대)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손해를 배상받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손해 배상을 받으려면 우선 사고의 원인인 급발진이 운전자의 미숙 때문인지, 차체 결함 때문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차체 결함이 실제 사고로 이어졌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 소송까지 가더라도 법원이 이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오랜 운전경력을 가진 A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97년 주차관리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차량을 이동시키려고 시동을 걸고 기어를 '주차'에서 '전진'으로 바꿨습니다. A씨가 탄 이 차량은 갑자기 앞으로 진행하면서 다른 주차된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고 옆 건물 벽에 부딪힌 후에야 멈춰섰습니다. 

A씨는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고 1999년 급발진 사고 피해자들과 함께 1인당 5000만~6000만원씩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씨 등은 1심에서 일부승소했으나 2심에서 결론이 뒤집혔습니다. A씨는 2004년 대법원에까지 소송을 끌고갔으나 역시 패소했습니다.

◇車제조사 제조물책임 부인, 근거는?= A씨는 해당차량의 변속기에 시프트록(Shift Lock)이 장착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차량에 결함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가 '제조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A씨가 문제삼은 시프트록이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만 변속레버를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당시 1개당 3500원짜리 부품이었습니다. 시프트록은 운전자의 페달조작 실수를 방지해 급발진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현재 이 장치는 모든 차량에 적용이 되고 있는데 당시 피고였던 자동차 회사는 이 부품을 사고차량에 쓰지 않았습니다.

1심에서는 A씨 사고 때 문제가 된 차량에 이 시프트록이 없다는 점을 '결함'으로 인정, 원고 일부승소 판정을 내렸습니다. 제조사가 몇 년 전부터 시프트록을 '급출발 방지장치'로 소개해왔음에도 문제가 된 차량모델에는 이를 달지 않은 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5000만~6000만원씩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원고들에게 200만~500만원의 배상금만 인정했습니다. 

배상명령에 불복한 제조사와 배상금액에 만족하지 못한 A씨 등의 쌍방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시프트록은 급발진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보이는 브레이크·가속페달의 잘못된 조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며 시프트록을 달지 않은 제조사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시프트록이 달려있지 않다고 해서 사고 자동차가 사회통념상 확보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시프트록의 급발진 사고 예방효과도 불분명하고 시프트록이 없대서 급발진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3심 역시 제조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의 경우 그 생산과정은 제조업자만 알 수 있어 그 제품에 어떤 결함이 존재했는지, 그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할 지 여부는 일반인으로서 밝힐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며 "소비자 측이 결함과 손해발생의 인과관계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봤습니다. 제품결함과 관련한 소송에서 소비자에게 입증책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본인의 과실 없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실수로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점) △결함이 제조업자만 알 수 있는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 등 2가지를 입증해야만 하는데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A씨의 상고신청을 기각했습니다. 

2004년의 이 대법원 판례는 급발진 사고를 비롯해 현재까지 13년 이상 다양한 사건에서 제조물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제조물책임과 관련한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어느 정도로 완화해야 할지, 그리고 최소한 소비자가 입증해야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비자에 입증책임, 정당한가= 2002년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 결함으로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에 손해가 발생할 때 제조업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조사는 제품의 구조나 품질, 성능 등에 있어 기대가능한 범위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설계 등 과정에서 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설계상 결함'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으로 다른 설계를 했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 제조업자가 다른 설계를 채택하지 않아 제조물이 안전하지 않게 된 경우를 의미합니다.

게다가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업자가 당시의 과학·기술수준으로는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또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실제 소송에서 급발진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받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셈입니다. 아울러 A씨 사례에서 대법원이 요구한 2가지 요건(본인의 과실이 없었다는 점, 회사만 알 수 있는 결함이 존재한다는 점) 역시 입증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실제 국내에서는 하급심에서 일부 운전자들이 급발진사고 관련 승소를 하더라도 항소심, 상고심 등 상급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많습니다. 바로 A씨 사건의 판례에서 확립된 입증책임 논리 때문입니다.

◇해외서도 대부분 '운전자 책임' 결론= 입증책임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이 고도의 기술을 적용해 생산되는 데다 관련 정보가 전적으로 제조업체에만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사실상 소비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급발진 사고에 대한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2년 작성한 '자동차 급발진 사례조사 결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일본, 캐나다 등에서도 급발진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당국이 원인파악에 나섰지만 차량결함보다는 운전자의 조작미숙에 따른 급발진이 대부분이었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대신 선진국은 다양한 급발진 유형 중 가속페달을 실수로 밟아 발생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시프트록을 모든 차량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제도화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9년 정부가 자동차업계에 시프트록 장착을 권고했고 2000년부터는 국내에 출시되는 전 차량에 시프트록이 달려 있습니다.

그나마 미국이 여타 국가에 비해 소비자·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상당히 경감시켜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제조업자에 제조물 책임을 보다 강하게 묻는 것은 각종 사회보험 등 사회보장망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미흡해 소비자·피해자로 하여금 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것이므로 한국 등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증책임부담 줄어들까= 소비자에게 부과된 입증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20대 국회에서 지난 2월 발의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은 소비자가 정상적으로 제품을 사용했음에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제조물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이 개정안은 지난 3월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4월 중순 공포됐습니다. 이 조항은 내년 4월19일부터 시행이 됩니다.

법원의 보수적인 해석태도가 바뀔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오기도 합니다. 1심에서 승소한 A씨에게 고배를 마시게 한 2심 판결의 주인공이 바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인 김이수 헌법재판관입니다. 김 후보자는 2003년 A씨 사건 항소심을 관장하는 부장판사로서 A씨 주장을 모두 배척한 바 있습니다.

청문회 이틀째인 지난 8일 김 후보자는 과거 본인이 내린 자동차 급발진 사고 판결에 대해 "입증책임을 과도하게 소비자에게 부담시킨 것"이라는 김도읍 의원(자유한국당)의 지적에 "저도 당시 기각을 하기는 했지만 의원님의 지적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김이수 후보자는 김도읍 의원이 "의료사고도 그렇고 여타 제조물 책임사건에서도 다 소비자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다"는 등 지적에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법원과 함께 최고 사법기구로 꼽히는 헌법재판소의 장으로 지목된 김이수 후보자의 발언은 향후 유사사례가 나올 때 사법부의 스탠스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한편 급발진으로 피해를 본 국내 소비자 등이 제조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는 엄격한 증명책임을 부담하지만 급발진 때문에 타인의 생명·신체·재산을 해쳤다는 이유로 형사기소됐을 때는 검사가 운전자 과실인지 제조사 결함 때문인지를 입증해야만 합니다. B씨는 2005년 서울 모처에서 대리운전을 하다가 급발진 사고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를 내는 사고를 냈습니다. 

검찰은 업무상 중과실 치사상죄 혐의로 B씨를 기소했지만 1심에서 대법원까지 이르는 기간 B씨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B씨의 경우에도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에 브레이크를 밟거나 후진등이 켜지는 등 전형적인 급발진의 사례였습니다. 

검찰은 상고심까지 이 사건을 끌고 갔으나 2008년 대법원은 "(A씨 사례에서의) 이전 대법원 판결은 차체 결함이 증명되지 않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잘못 작동한 것으로 추인되는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릴 수 없다는 취지일 뿐"이라며 "검찰이 증명해야 할 운전자의 업무상 과실에 대해서도 민사판례를 근거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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