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DNA'…범죄예방 vs 인권침해

[박보희의 소소한法 이야기]'살인'부터 '재물손괴'까지…DNA 범죄정보 수집은 어떻게 할까

박보희 기자 2017.06.26 10:1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 31건의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에 있던 컵, 음료수 병 등에서 동일 인물의 DNA가 발견됐지만 주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2014년 절도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의 몸에서 앞선 31건의 절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DNA가 발견됐다. DNA 데이터베이스(DB) 덕분에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해결됐다. 

#노점상 단체 활동가 A씨는 검찰에 강제로 DNA를 채취를 당한 뒤 "무분별한 DNA 채취로 신체의 자유와 일반적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A씨가 DNA를 채취당한 건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다 집단주거침입죄로 징역 6월에 집해유예 1년을 확정받았기 때문이었다.

DNA 수집의 양면을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DNA 수집은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인권침해 가능성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DNA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수집돼 정보가 저장되고, 또 이를 거부할 수 있는걸까요.

◇잇따른 강력범죄…"범죄자 DNA 정보 관리하자"

DNA 수집은 2010년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발효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두순의 여아 성폭행 등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죠. 논의 끝에 재범 위험이 높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정보를 확보해 수사에 이용하고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충격적인 범죄들이 잇달아 발생하자 이보다는 범죄 해결에 대한 목소리가 더 높았죠. 결국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금의 DNA 수집이 시작됐습니다.

◇'집회·시위하느라 주거침입'은 수집, '결혼목적 납치'는 미수집?

모든 범죄자들의 DNA를 수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 DNA를 채취당하는 걸까요. 법 제5조에 따르면 방화, 살인, 체포·감금, 약취·유인, 인신매매, 인질, 강간, 추행, 절도, 강도, 폭력, 성폭력, 마약,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인데요. 미수범도 해당됩니다.

열거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수집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화의 경우 건물이나 교통수단, 물건 등에 불을 질렀다면 DNA 채집 대상이지만 자기 소유의 건물이나 물건에 불을 질렀다면 아닙니다. 납치도 DNA 채집 대상인데요. 예외가 있습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누군가를 유인하거나 사고 파는 행위를 했다면 DNA 채집을 하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은 어떨까요.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DNA 채집 대상이 됩니다. 성범죄의 경우 공공 장소, 회사 등에서 추행을 저지른 사람부터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DNA 채집 대상입니다. 미수범 역시 마찬가지죠. 주거침입의 경우 두 명 이상 또는 위험한 도구를 소지하고 다른 사람이 소유한 곳에 침입했을 경우 '특수주거침입'이 되고 DNA 채집 대상이 됩니다. 단순 주거침입이나 퇴거 요구를 받고 응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닙니다.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실형이 확정된 사람 뿐 아니라 보호관찰 명령, 치료감호 선고, 보호처분을 받은 미성년자, 형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 역시 DNA 수집 대상자입니다.  

◇해당 범죄 저질렀다면…DNA수집 거부 안돼

DNA 수집 대상 범죄를 저질렀다면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당사자가 동의하면 영장 없이도 DNA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 동의가 없어도 영장을 받아서 할 수 있죠. 

법은 DNA를 수집할 할 때 '신체나 명예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도록 합니다(법 제9조). 이를 위해 DNA는 입 안 점막이나 모발 등에서 채취하는 것이 원칙이고, 불가능할 경우에만 다른 신체 부위이나 체액 등에서 채취할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거나 수사를 더 해보니 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DNA 정보는 즉시 삭제해야 합니다. 법 제13조는 이를 정해두고 있는데요. 수사와 재판 결과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 죄명이 DNA를 채집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을 경우 등이 해당합니다. 데이터 정보를 삭제한 뒤에는 30일 이내에 이를 알려야 하죠. 

확보한 DNA 정보는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를 업무 목적 외에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했다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담당자가 이유없이 DNA 정보를 삭제하지 않았을 때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3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문제는 '디테일'

많은 나라들이 범죄자 DNA 정보를 확보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나 덴마크, 스위스 등은 수사 기록이 남는 모든 범죄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이들의 DNA정보를 저장해두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포르투갈은 3년 이상 징역 선고를 받은 경우,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등은 법이 정한 '심각한 범죄'에 해당할 경우 DNA 정보를 DB로 만들어 확보하도록 하고 있죠. 실제 DNA 정보는 미제 사건을 풀어주는 실마리가 되곤 합니다. 해외 국가들 역시 이를 DB화하는 이유일텐데요.

유용함의 뒷면에는 인권침해 위험이 공존합니다. 이때문에 DNA수집 대상이 너무 넓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집회·시위 과정에서 집단주거침입이 발생한 것까지 DNA를 수집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죠.

당장 법 개정은 쉽지 않은 일이니, 있는 법 안에서라도 제대로 관리가 이뤄져야 할텐데요. 시간이 지나며 DNA 수집 사례가 늘어난 만큼 인권침해 사례 역시 늘고 있습니다.

A씨는 DNA 채취 통보로 사생활이 침해됐다며 검찰을 인권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우편으로 DNA 채취대상 통보를 하면서 봉투 겉면에 'DNA 채취대상자 통보문'이라고 적어보냈습니다. 이 때문에 A씨의 자녀들과 이웃들까지 A씨가 DNA 채취 대상자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인권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DNA 감식시료 채취대상자'라는 사실은 대상자가 임의로 공개되기를 꺼려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DNA 정보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죠. DNA 정보에 대한 좀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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