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리포트] '갑질'에 '뻥' 뚫린 가맹사업법

프랜차이즈 가맹점 간 거리 제한하는 법 규정 없어···합의 이행 안 해도 제재 불가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08.06 05:00

프랜차이즈 '갑질'은 나는데 현행법은 기고 있다. 가맹점 사이의 거리는 가맹본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가맹점주끼리 단체를 만들어도 본부가 협상을 거부해 유명무실하다. 심지어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와 조정으로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제재는 없다. '을'의 위치에 놓은 가맹점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에 허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맹점 간 거리' 법 규정 없어 
머니투데이 'the L'이 유명 커피 및 치킨 프랜차이즈 총 56곳의 2014~2016년 가맹계약서를 단독 입수해 전수분석한 결과, 가맹점의 영업범위와 직결되는 가맹점 간 거리가 500m를 넘도록 규정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심지어 자바시티커피는 가맹점 간 거리조차 정해두지 않고 있었다.

치킨매니아의 가맹점 간 거리는 50m, 커피베이와 깐부치킨은 100m에 불과했다. 슈퍼커피는 150m, 에스프레사멘테일리와 오구쌀치킨, 잇커피는 200m였다. 카페베네는 가맹점 간 거리를 300m로 규정했지만, 가맹점이 입점된 '전체 건물의 외곽'이 아니라 해당 '가맹점의 외곽'을 기준으로 삼아 실제로는 300m보다 가까운 건물에 입점할 수 있도록 했다. 빽다방은 영업범위를 지상과 지하로 나눠 설정했다.

현행 가맹사업법에는 가맹점 간 거리에 대한 기준이 없다. 과거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소 500m' 등 가맹점 간 영업지역 설정 기준을 만들었지만 2014년 '규제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폐지됐다. 동종 영세업체 매장이 있는 곳 근처에 입점하지 말라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가 가능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이승창 프랜차이즈학회장(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은 "프랜차이즈의 업태가 골목 구멍가게에서 대기업까지 수십, 수백 가지인데 일률적으로 거리를 지정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김밥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가맹점 간 거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맹점단체 '빛좋은 개살구'

가맹점주들에게 단체협상권이 주어져 있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상 가맹점주들은 단체를 만들 수 있고, 이 단체가 가맹본부에 협의를 요청하는 경우 가맹본부는 '성실하게 응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벌칙조항은 전무하다.

김태훈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사무국장은 "가맹점주 단체가 협의를 요청하는 경우 가맹본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위배하는 경우 제재하는 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맹점주가 단체를 결성한 경우 일정 기간 동안 가맹거래를 일시중지하는 이른바 '집단휴업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맹점주가 가맹본부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도 현행법이 보장하는 건 10년 뿐이다. 일부 프랜차이즈는 계약기간 10년이 임박한 점주를 대상으로 계약갱신을 빌미로 점포환경 개선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현행법상의 계약갱신요구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법상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에 조정이 이뤄진 사안인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정위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제재를 내릴 수 없다. 가맹본부가 조정을 통해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가맹점주 입장에선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합의 사항이 이행된 경우에만 제재를 면제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가맹본부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 가맹사업법상 가맹본부에 부과되는 과징금은 매출액의 2%까지로 제한돼 있다.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5%로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위가 가맹본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가맹본부가 이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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