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과 판결] 이상훈 대법관

사회적 논란 된 사건 잇달아 주심…'원칙에 충실한 판결'

송민경 기자(변호사) 2016.01.12 08:05
이상훈 대법관 후보자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대법관(60·연수원 10기)은 원칙에 충실한 판결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우병 PD수첩 사건,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사건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들을 맡았다.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대법관은 2011년 2월 양승태 당시 대법관(현 대법원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제청자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임명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다음은 이 대법관의 주요 판결.

◇ '긴급조치 9호' 위헌…"수사기관‧법관 불법행위 하지 않았다"

이 대법관은 유신체제에서 선포됐던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엇갈린 두 판결에서 모두 주심을 맡았다.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5월 선포됐다. 유신헌법에 대해 부정·반대·비방하거나 개정·폐기하자고 주장하는 행동 또는 보도를 일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4월 긴급조치 9호가 헌법에 어긋나 무효라고 판단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긴급조치가 해제되자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풀려났던 피해자의 유족이 낸 형사보상금 청구 소송을 만장일치로 인용한 것이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며 "긴급조치권의 목적상 한계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긴급조치권을 발동할 대상이 되는 비상사태였다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후 이 대법관은 이듬해 10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 대해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그가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부 인용한 판결을 확정하며 "수사기관과 법관의 행동은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으로 선언되기 이전이었던 만큼 긴급조치를 바탕으로 수사하거나 판결을 선고했더라도 불법행위가 아니었고, 따라서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유죄가 확정됐고, 이후 재심에서 무죄가 입증됐다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결에 대해 일각에서는 형식 논리에 치우쳐 사실상 긴급조치 9호를 바탕으로 한 과거의 수사와 재판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긴급조치를 근거로 수사와 재판을 한 행위에 대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유신 정권에 면죄부를 준 반역사적 판결"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반대의견…객관적 증거의 중요성 강조

이 대법관은 2015년 8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72)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한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주심으로서 반대의견을 냈다.

다수의견은 한 전 총리가 한만호 한신건영 전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이 대법관과 이인복·김용덕·박보영·김소영 대법관은 전체 혐의 중 6억원은 무죄라는 입장이었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한 전 총리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재판에서 말을 뒤집었다. 현금과 달러, 수표로 총 9억원을 조성한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한 전 총리에게 건네지는 않았고 로비 자금 등으로 썼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대법관 8명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전체 혐의 액수 중 3억원에 대해 증거가 발견된 만큼 비슷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성한 나머지 6억원도 같은 용도로 쓰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대법관 등은 6억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며 이 부분을 유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과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을 상기시키며 "이같은 원칙을 헛된 구호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국공립대 기성회비 징수는 적법…"돌려줄 필요 없어"

이 대법관은 또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징수가 적법한 처분이라는 취지의 판결에서 전원합의체를 이끌었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린 가운데 이 대법관은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6월 서울대 등 7개 국·공립대학생 3800여명이 "부당하게 징수한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며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기성회비는 각 대학에 설립된 기성회가 교육시설과 운영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 후원금 형태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달리 강제로 징수됐고, 계획한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사립대는 1999년을 전후해 기성회비 명목을 없앴지만, 국·공립대는 이후에도 등록금을 '수업료+기성회비' 형태로 부과했다.

특히, 수업료 대신 기성회비를 올리는 편법으로 등록금을 인상한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학생들은 2010년 집단으로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는 대학의 목적에 맞는 교육과 시설을 제공하는 취지로 사용했다면 법령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위법한 징수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법관 중 6명이 반대하며 팽팽한 법리 공방이 벌어졌음을 시사했다. 박 대법관은 기성회비가 정당하다는 다수의견에 서서 기성회비 논란을 결론짓는 판결을 이끌었다.

◇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제작진 거짓 인식 못해"

이 대법관은 2011년 9월 대법원 2부 주심으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인 정운천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8년 4월 방송된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은폐·축소한 채 수입 협상을 체결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방송 후 후폭풍이 거셌다.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인터넷에서 이 전 대통령의 탄핵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해 달라는 촛불 시위가 수 차례 열리기도 했다.

검찰은 제작진에게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 2부는 "보도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르지만 제작진이 허위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확정했다.

◇ 정봉주 전 의원 유죄…"BBK 의혹 허위"

이밖에 이 대법관은 2011년 12월 대법원 2부 주심으로서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정 전 의원이 허위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도 의혹을 제기했다고 인정한 1·2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반발한 일부 누리꾼들이 주심판사인 이 대법관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파장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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