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일임계약상품 손실…증권회사는 중개만 해줬으니 책임 없다?

11년차 금융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자본시장' 이야기

김도형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6.12.05 08:59

A증권회사 직원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투자자 B에게 C투자자문회사가 운용하는 투자일임계약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투자일임계약을 위해 작성한 투자정보확인서에는 B의 투자성향이 '공격투자형'에 해당한다고 체크돼 있었으나, 이 투자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A증권회사가 자체 진행한 B의 투자성향 진단결과에서는 '위험중립형'으로 평가되었고 게다가 평소 B는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에만 가입하고 있었다. 
A증권회사 직원은 이 사건 투자상품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상품에 내재된 위험성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만 부각하여 설명했다. 이에 B는 증권회사 직원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이후 C투자자문회사는 B의 일임재산을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가 많은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B는 A증권회사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은 상품을 권유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랩어카운트로 더 많이 알려진 투자일임계약

몇년전 모 증권사가 랩퍼(Rapper)를 광고에 등장시켜서는 비슷한 발음의 랩어카운트(Wrap account)를 새롭게 선보인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한 적이 있다. 당시 이 광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에 힘입어 랩 상품들도 많이 판매되었고 현재도 그 인기는 유지되고 있다. 

투자일임계약은 이와 같은 랩어카운트를 운용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와 같은 투자일임계약은 고객이 직접 투자상품을 고르고 매번 매도 · 매수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투자패턴에 맞는 상품에 가입하고 돈을 입금하기만 하면 그 이후 거래는 증권회사 또는 증권회사와 계약을 맺은 투자자문회사가 고객을 위해 전문성을 발휘하여 수익을 내고 이 수익에서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돌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즉 금융전문가가 나서서 고객의 불편함은 덜어주고 수익은 극대화해 주겠다는 것이 모토이다. 

투자일임계약을 통해 고객들로부터 예치받은 돈은 증권회사가 직접 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자문회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문회사는 대부분 규모가 작고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은 반면, 이러한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회사는 국민이 모두 아는 대형금융사이기 때문에 투자자문회사가 운용하는 투자일임계약상품은 증권회사를 통해 판매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많은 고객은 증권회사가 판매하는 것이니 당연히 증권회사가 운용하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큰 증권회사가 운용하니 안심하고 자신의 돈을 맡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이 가입하는 투자일임계약상품이 증권회사가 운용하는 것인지, 별도의 투자자문회사가 운용하는지는 투자설명서를 통해서나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통은 투자설명서 하단에 증권회사 로고와 투자자문회사 로고가 함께 들어간다). 투자자문회사가 운용하는 경우 고객이 증권회사가 아닌 투자자문회사에 운용을 위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임계약서에 증권회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증권회사가 운용한다고 해서 더 좋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 있는 투자자문회사가 좋은 수익률을 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증권회사가 투자자문회사와 별도의 계약을 맺고 그들에게 운용을 맡기는 것이다. 

투자손실 나면 증권회사는 '모르쇠' 일관…"소개만 했다" 

그런데, B와 같이 증권회사를 믿고 자신의 돈을 맡긴 투자자는 투자금을 날리는 경우 증권회사에게 책임을 지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증권회사는 투자자가 운용을 맡긴 것은 투자자문회사이지 자신들이 아니며 자신들은 다만 소개자에 불과하므로 자신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법원은 증권회사가 투자일임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일임계약상품을 적극적으로 소개 · 설명하는 등 상품을 판매 · 중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자로서 부당한 투자권유를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의무를 위반하여 부당한 투자권유를 하여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증권회사는 고객과 투자자문회사 사이에 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이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받지 않았고, 고객이 얻은 수익에 대해서도 투자자문회사가 수수료를 챙겼을 뿐 증권회사는 별도의 수수료를 챙긴 사실이 없으므로 자신에게 책임을 물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비록 운용수익 내지 판매수수료를 챙기지는 않았으나, 투자자문회사가 중개자인 당해 증권회사의 계좌를 통해 자산을 운용하면서 자연히 증권회사는 투자자문회사의 거래행위마다 거래수수료를 취하게 된 것이므로 경제적 이익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며, 투자자는 투자자문회사가 아닌 증권회사 직원의 말을 믿고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도형 변호사는 한국증권법학회 이사, 금융보험법연구회 간사 등 금융·증권·자본시장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교수(금융법실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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