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전관 변호사의 단상(斷想)

장준아 2024.03.18 05:00
장준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사진=법무법인 광장
2024년 2월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은 곳이자 많은 소중한 사람과 인연을 맺고 선후배님들의 가르침 속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정든 법원을 떠나 미지의 세계인 변호사의 길에 첫 발을 들였다.

원고와 피고가 번갈아 그럴싸한 논리를 펼치는 생생한 법정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상호간 입장차가 커져가는 것을 지켜보거나, 범행 동기에 나름의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려는 염치없는 변론을 바라보면서 좋던 싫던 간에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의 태생적 한계를 절감하던 순간이 많았다. 그렇게 당사자는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었고, 법관의 업무는 그 접점을 찾아 해답을 찾아야 하는 고난한 일이었다.

법관의 판단이 승자에게는 반길 일이지만 패자에게는 불만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진리이고, 비교적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성향의 법관에게는 재판 업무가 만만할 리 없었다. 법관의 고민은 양쪽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데 집중하지만, 결국 정답은 찾을 수 없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노릇이었다.

얼마 전 구속된 의뢰인을 접견했다. 1심이 진행된 사건이어서 사전에 1심 기록을 충실히 살펴보았다. 변호사의 직분에 충실하게 의뢰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지난 20년간 사건과 무관한 주장이면 즉시 제지하던 버릇 탓인지 또 중간에 말을 자른듯하여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의뢰인은 1심에서 예상과 달리 중형을 선고받아 심신이 혼란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재판장 개인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다. 다만 중형의 이유를 나름 추론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20년 경력의 법관 출신 변호사는 결국 끝까지 경청하지 못하고 화제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성찰 끝에 찾아낸 결론이고 그 추론에 논리적 허점도 없었으니 그게 아니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원고의 세계와 피고의 세계가 다르고, 피고인이 접한 세계와 피해자가 접한 세계가 다른 것처럼 법관의 세계와 변호사의 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물질적 세계는 정신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허무맹랑하다고 생각되는 주장을 열정적으로 변론하는 변호사를 보면서 연기자의 끼를 타고 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변호사가 승소를 확신한 사건에서 예상과 달리 패소하여 당혹스럽다며 재판장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무엇이 주문에 들어갈 정답인지보다 의뢰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살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변호사 세계로의 점프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첫 피고인 접견에서 다시 한 번 피하고 싶은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20년 동안 법대에 앉아 사건을 바라본 나의 세계에서 피고인의 세계는 상당히 낯설었다. 멀티버스(multiverse)에서 영감을 얻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주인공이 재미를 넘어 부럽기까지 하였는데, 앞으로 그 주인공처럼 다양한 세계를 넘나드는 초인간적 능력을 지닌 변호사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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