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의 부지(不知)는 용서받지 못한다?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박정수 2024.03.20 12:00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법의 부지(不知)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경언이 있다. 법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법 위반을 하게 되었더라도 법 위반이 정당화되지 않고 법 위반으로 인한 제재나 처벌이 면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법에도 반영돼 있다. 예컨대 형사벌과 관련해 형법 제16조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형법 규정에 관한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이 규정에 따라 형사벌의 죄책을 면할 수 있지만 실제 사례에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의 부지에 널리 면죄부를 준다면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법치국가의 시민이라면 마땅히 법을 지켜야 하고, 어떤 법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함은 당연하다. 이러한 생각이 법의 부지는 용서되지 않는다는 법언, 그리고 법제도에 반영되어 있다고 이해된다.

세법의 영역에도 위와 같은 법의 경언은 그대로 적용된다. 납세의무자가 세법의 존재를 모르거나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조세를 제대로 신고, 납부하지 못한 경우에도 가산세와 같은 불이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는 판례 법리가 있지만 그 인정 범위는 극히 협소하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만한 경우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납세의무자로서 세법을 잘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조세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제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세법 규정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 필요가 있다. 법은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특히 세법은 전문적, 기술적 내용이 많아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입법 기술상 세법을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원칙' 규정을 두고 이에 대한 '예외' 규정을 둔 후 '예외의 예외' 규정, 나아가 '예외의 예외의 예외' 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세법 규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실제 부동산 양도소득세 관련 세법 규정이 너무 복잡해 조세전문가들도 자문을 꺼리고, '양포자'(양도도소득세를 포기한 사람)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둘째, 세법 개정이 지나치게 빈번하다. 세법은 경제적 상황, 정책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므로 세법 개정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현실적으로 개정이 빈번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셋째, 대법원 판결과 반대 취지로 세법을 개정할 때 신중을 기하고 개정 이유를 잘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대법원이 여러 합리적 근거들을 판결문에 자세히 기재하여 결론을내렸는데, 대법원 판결과 반대 취지로 법 개정을 하는 경우 납세의무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해당 쟁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던 납세의무자들은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정리되었다고 인식하게 된다. 대법원 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반대 취지로 세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납세의무자들은 세법 개정을 알지 못할 수 있다. 설령 세법개정을 알더라도 대법원 판결과 개정 세법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개정 내용이 합리적이지 않거나 개정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세법의 내용이 이해하기 쉽고 합리적이어야 세법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법언, 나아가 세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납세의무자들이 수긍할 것이다.
[박정수 변호사는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변호사로 주요 업무분야는 조세·관세 및 행정소송 등이다. 2001년 대전지법 판사로 시작해 인천지법, 서울북부지법을 거쳐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쳤고 2011년 대법원 조세공동연구관실에서 재판연구원으로 활동해 조세분야에서 정통한 전문 법관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창원지법 부장판사 겸 연구법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했고 현재 화우 조세쟁송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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