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만성질환 앓다 직장서 사망, 업무상재해 아냐"

뇌동맥류 지병보유자의 공사현장 사망..."장기간 음주·흡연 등 지병악화 위험요인, 인과관계 부족"

황국상 기자 2017.07.19 09:09
/그래픽 = 임종철 디자이너

뇌동맥류 등 질환을 앓던 근로자가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것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부장판사 장순욱)는 서울의 한 주택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쓰러져 숨진 A씨의 부인 B씨가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절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B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5년 1월 초순부터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중 10일째 되는 날 정신이 혼미해지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며 실신했다. 119구급대가 A씨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후송해 치료를 받게 했으나 이틀 후 A씨는 사망했다.

아내 B씨는 A씨가 40여년의 경력을 가진 숙련공으로 이번 사고 전까지 건강했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뇌동맥류 등 지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고 당일 공사업자에게 질책을 받는 등 흥분상태여서 위험성이 가중됐고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A씨의 혈압을 상승시켜 기존 질환인 뇌동맥류 등과 함께 뇌출혈을 유발했다거나 뇌동맥류 등을 자연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 "나이, 경력, 실신 전 근로내역, 근무시간이 불규칙해 주당 평균근무시간을 근거로 과로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건설일용직 특성 등을 비춰보면 신체이상을 초래할 만큼 육체적 과로가 누적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갖고 있던 지병인 뇌동맥류는 전조증세가 없고 수면 등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언제든지 파열이 가능하다"며 "흡연, 고혈압, 음주 등이 뇌동맥류 파열에 영향을 주는 위험인자임에도 A씨는 사망직전까지 장기간 음주·흡연을 해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A씨의 뇌동맥류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앞서 2008년 대법원은 대기업 생산직으로 입사한 후 신장이상이 발생해 업무상 재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원고가 낸 소송에서 "막연히 과로나 스트레스가 일반적인 질병의 발생·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과로·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현대의학상 그 발병이나 증상악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에까지 곧바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 업무상 재해에 대해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며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해당 근로자의 건강상태, 기존질병 유무, 질병전염 여부 등 간접사실에 의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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