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으로 쌓인 마일리지, 내가 쓰면 횡령?

[황국상의 침소봉대] 회사에 마일리지·포인트 사용 내규 없다면 OK···내규 있다면 배임죄될 수도

황국상 기자 2017.08.03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30대 초반 직장인 여성 A씨는 부서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커피숍에 들렀습니다. 부장이 건넨 법인카드로 결제한 A씨는 '포인트를 적립할 거냐'는 점원의 물음에 지갑에서 본인 명의의 포인트카드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총 5만5000원을 결제하고 쌓인 포인트는 55원.

옆에 있던 동료 B씨가 장난치듯 말합니다. "그 포인트, 회사 건데 본인이 적립하면 횡령아냐?" 문득 A씨는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내 포인트카드에 포인트를 적립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커피 포인트만 문제가 될까요. 남의 돈으로 결제하면서 내 이름으로 포인트를 적립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또 있습니다. 바로 항공 마일리지입니다. 회사에서 출장가는 직원의 비행기 표를 대신 결제해주고 그 직원이 비행거리에 비례한 마일리지를 직원 이름으로 적립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 경우 이 마일리지를 사용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개 이렇게 쌓인 마일리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커피숍의 포인트나 항공사의 마일리지 모두 '재산상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회사마다 제각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항공 마일리지를 어떻게 쓸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항공사도 개인 뿐 아니라 회사 명의로도 별도의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대개는 항공기를 이용한 개인의 이름으로 마일리지를 적립해주고 있습니다.

국내 10위권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해외출장으로 생긴 항공 마일리지는 당연히 개인 명의로 적립해 개인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왔다"며 "개인 명의의 마일리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도 "출장으로 쌓인 항공 마일리지는 직장인들이 누리는 쏠쏠하면서도 작은 혜택에 불과하다"며 "당연히 개인 명의로 적립하는 게 옳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대형증권사 한 곳은 개인이 출장갈 때 쌓인 마일리지를 별도로 관리해 다음 출장용 티켓을 구매할 때 사용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 증권사 관계자 D씨는 "출장비용을 정산할 때 개인별 마일리지 내역을 회사에 제출한다"며 "마일리지로 티켓을 구매할 수 없는 경우에만 회사비용으로 티켓을 산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 명의의 재산상 이익이지만 회사의 업무를 위해 회사 비용으로 티켓을 산 것인 만큼 회사를 위해서만 해당 마일리지를 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마일리지를 회사가 가져갈 근거는 없습니다. D씨는 "마일리지가 개인 명의로 적립돼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퇴사하면 회사가 마일리지를 회수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윤상 변호사(법무법인 시헌)는 "회사 명의로 쌓이는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개인적 용도로 썼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개인 명의로 적립하는 행위 또는 개인 명의로 적립된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는 어렵다"라며 "사전에 마일리지나 포인트 사용 범위에 대한 내부 규정이나 합의가 없었다면 이를 문제삼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법인카드로 커피를 사 마시고 그 포인트를 내 명의로 적립한 뒤 개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출장으로 얻은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쓰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무원이 그렇습니다. 정부는 2009년 5월 공무원이 출장으로 쌓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적 용도로 사용하지 말도록 하는 내용의 규정을 내놨습니다. 공무출장으로 쌓인 마일리지를 개인이 국내외 여행을 갈 때 좌석승급이나 무료 티켓을 얻는 데 사용하던 관행이 적발돼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규정에 따라 정부는 출장으로 적립한 항공 마일리지를 출장용 티켓구매나 출장시 좌석승급 등 용도로만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무로 적립한 마일리지로 항공 운임료를 절약했을 때 출장여비를 일부 증액해주는 등 보상은 주어집니다.

형법 등 현행 법령에 따르면 마일리지·포인트 등은 어디까지나 '재산상 이익'일 뿐 '재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일리지 등을 사적으로 사용하더라도 횡령죄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아닌 ‘재산상의 이익’에 적용되는 배임죄에는 해당될 여지가 있습니다.


신상철 변호사(법률사무소 요수)는 "회사의 비용으로 업무상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발생한 마일리지 등을 회사·공적 업무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마일리지 등을 사적으로 썼을 때 법리적으로 회사가 개인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며 "대개 사안이 경미하기는 하지만 업무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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