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하면 정규직 전환' 약속하면 이유없는 해고 안된다"

[인물포커스]대법원 '정규직 전환기대권' 인정 첫판결…양지훈 변호사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

박보희 기자 2016.11.16 15:22
사진=양지훈 변호사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2년을 초과해 사용하는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4조의 내용이다. 아마도 법을 만든 이는 '계약직은 2년까지만,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의미로 이 조항을 만들었을 터다. 하지만 직원을 고용하는 회사는 '2년까지는 마음껏 계약직을 사용하고 이후에는 새로 고용해도 된다'로 해석했다. 법은 근로자의 '보호'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근로자를 '쓰고 버리는' 근거가 됐다.

기간제 근로자, 즉 계약직에게 2년은 '희망 고문'의 시간이다. "일 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회사의 말 한마디에 기대를 걸고 정규직이 퇴근한 후 야근을 하고, 정규직은 하지 않을 위험한 업무를 도맡아하며 능력을 인정받으려 발버둥친다.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근로계약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이라고 적힌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계약직은 계약직일 뿐이다. 입사 전 어떤 약속을 했더라도 '계약서'에 적혀있지 않은 말은 '그냥 하는 말'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난 10일 대법원이 '그게 아니다'라고 했다. 계약직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다면, 정규직 전환을 '기대'할 만했다면, 계약 기간이 끝났더라도 '정당한 이유'없이는 해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기간제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4년간의 다툼 끝에 이같은 판결을 받아낸 근로자를 대리한 양지훈 변호사를 지난 11일 서울시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만났다.

◇매번 뒤바뀐 판결…5년만에 인정받은 '전환 기대권'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 양 변호사 역시 "결과를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이 대법원에 오기까지 결과는 매번 뒤집혔다. 2년 계약직으로 업무를 시작한 A씨는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쯤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정규직 전환이 안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 외에 계약이 끝난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이 된 터였다. A씨는 1차 인사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는데 정규직 전환이 안된 것은 부당하다며 2012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사측의 손을, 중앙노동위원회(중앙위)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위 결정에 불복한 사측은 결국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행정법원은 중앙노동위 결과를 뒤집고 또다시 사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 '부당해고가 맞다'고 결정했다. 결국 대법원에 와서야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매번 판결이 엇갈린 이유는 법원마다 '기대권'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실제 2007년 기간제법이 시행된 이후 법원은 '갱신기대권'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해왔다. 법에 '2년'이라는 기간이 명시돼있기 때문에 '기대권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대법원이 '갱신 기대권'을 인정한 이유는 뭘까. 대법원은 "기간제법의 취지가 기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해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데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배제 또는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입법 취지가 법 이름에 나와있는 것처럼 근로자 '보호'에 있다고 본 셈이다.

◇"'갱신기대권' 법원 해석 긍정적이지만 비정규직 문제 실질적 해결책은 아니다"

양 변호사는 "법원의 해석은 기대 이상의 판결로 비정규직 문제를 위해 매우 고무적"이라면서도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모든 기간제 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갱신기대권은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을 말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퇴직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일정 요건을 채워 계약 갱신을 기대할만 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인사평가 등을 거쳐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규정이 없더라도 계약의 내용, 기준, 근로요건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계약 갱신의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 전환의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번 사건에서는 사측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점, 실제 대부분 계약직들이 인사평가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 점, 인사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근로계약서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기대권'이 인정됐다.

양 변호사는 "결국 기대권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회사는 이 기대권을 인정받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며 "사용자 측에서 오히려 이 판결을 악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원하지 않는 회사측에서 '기대권'을 인정받을 만한 내용들을 아예 시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은 '전환 가능성'을 열어뒀던 회사들이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인사평가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계약직 고용 가능 업종 제한'하도록 기간제법 개정·노동법원 설치 필요"

양 변호사는 "기대권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간제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 변호사는 "지금은 사실상 모든 직종에서 계약직을 고용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많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며 "계약직을 고용할 수 있는 업무와 직종을 제한하는 등 사용 제한 규정을 명백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제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노동법원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근로자 A씨가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 2012년 10월인데, 2016년 11월에야 '부당해고' 판결이 나왔다. 4년간의 소송 끝에 받아낸 판결이다. 양 변호사는 "생계가 달린 근로자 입장에서 소송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전문화된 법원을 만들어 소송기간을 줄이고 판결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근로계약을 맺을 때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직업을 구하는 입장에서 근로계약서 요건들을 따지는 것은 힘들 수 있지만, 계약서상에 근로조건, 계약갱신에 대한 실질적이 내용들이 명시돼야 한다"며 "개인이 대응하기 힘들기때문에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교섭을 하는 등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양 변호사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고 말하는 사용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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