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 판례氏] 의식 불명 사실혼男과 혼인신고…"배우자 상속권 인정돼"

男·女가 원래 사실혼 관계에 있던 사이라면 혼인의사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6.08.08 10:06



'사실혼'은 단순한 동거 관계를 넘어 장차 혼인신고를 해 법적으로도 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남녀의 결합을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때문에 법적으로는 혼인신고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법률혼과 같이 보호된다.

 

하지만 혼인신고가 없는 관계는 민법상 여전히 부부가 아니므로, 이 상태에서 한 쪽이 사망하면 남겨진 사람은 그 사람을 상속하지 못하게 된다. 민법상의 상속권자는 법률상의 배우자만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사실혼관계에 있는 사람이 위독한 상태에 빠지자, 그가 사망하기 전 다른 일방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 상속권자도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2012므2451)

 

A씨(男)와 B씨(女)는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은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이 함께 생활하며 나중에 혼인신고를 해 온전한 부부가 되기로 약속까지 했다. 그러던 중 A씨가 불의의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가 됐고, B씨는 A씨와 부부가 되기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한 B씨는 A씨의 가족들로 인해 곤란에 처했다. B씨가 A씨의 법적 아내가 되면 가족들보다 우선해 상속을 받게 되는 지위가 되기 때문에 가족들과 마찰이 생겼다. 가족들은 B씨가 일방적으로 한 혼인신고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법률상의 유효한 혼인이 성립되려면 '혼인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사실혼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에도 한 쪽이 다른 쪽의 혼인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라면 그 혼인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A씨와 B씨의 혼인이 무효라고 보지 않은 것은 A씨에게 B씨와 혼인할 의사가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상대방의 혼인의사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혼인의 관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실혼관계를 형성시킨 상대방의 행위에 기초해 그 혼인의사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면서 "상대방이 혼인의사를 명백히 철회했다거나 당사자 사이에 사실혼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했다는 등의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혼인의사는 있었다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A씨가 의식불명이 되기 전까지 B씨와 앞으로 혼인신고는 하지 않겠다거나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의식불명이 된 상태라도 B씨가 일방적으로 A씨와 혼인신고를 한 것이 A씨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A씨와 B씨의 혼인신고는 유효하게 인정받아 이들은 법적인 부부가 됐다.

 

 

판결 팁 = 민법상 배우자는 항상 1순위 상속권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배우자는 당연히 법률상의 배우자이며, 법률상 배우자가 되기 위해서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른 '혼인신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실혼 배우자도 관계를 해소할 때 법률혼 부부의 이혼과 마찬가지로 위자료나 재산분할청구를 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한 쪽이 사망할 경우 상속은 받지 못하게 된다.

 

위 사례에서는 의식불명 상태에 있어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A씨에 대해 B씨가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해 자칫 A씨가 사망할 경우 B씨가 1순위 상속인이 될 상황이 되자 원래 A씨를 1순위로 상속 받을 가족들이 이들의 혼인이 무효라고 주장해 문제가 됐다.

 

사실혼관계는 단순한 동거보다 훨씬 더 강하게 결합된, 혼인신고만 없는 부부나 다름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이런 입장을 전제해 한 쪽이 관계를 끝내려던 의사가 명확히 있었다는 사정과 같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들에게는 서로 장차 법률상으로도 부부가 되겠다는 의사가 있던 것으로도 추정하는 것이다.

 

원래 1순위로 상속을 받을 수 있었던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실혼에 상당히 많은 보호를 해주려는 법원의 입장도 일견 타당하다. 때문에 법 전문가들 중에는 사실혼 배우자도 아예 민법상의 상속권자가 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주의할 점은 이렇게 법이 보호하는 사실혼은 '중혼', 즉 이미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의 사실혼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법이 인정하지 않는 중혼을 법이 나서서 보호까지 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관련 조항

민법

제812조(혼인의 성립)

① 혼인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② 전항의 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 2인의 연서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

 

제815조(혼인의 무효)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 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제1003조(배우자의 상속순위) ①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제1000조제1항제1호와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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